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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사진

영화 '바바둑'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 후 읽기를 권합니다.


태블릿이나 PC환경에서 읽기를 권장합니다. 

 

영화 '바바둑'의 스토리가 길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스킵하시고 명장면과 스틸컷. 리뷰만 읽으셔도 됩니다.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걸 알아 
바바둑이 그렇게 만들었어
하지만 난 엄말 사랑해 앞으로도 사랑할 거야

 

바바둑 평점

왓챠: 3.3/5

IMDb: 6.8/10

메타크리틱메타 스코어(전문가 평점) = 86/100 (Must-See) ,  유저 스코어 = 8.3/10 

로튼토마토전문가 평가: 98/100 , 관객 평가: 72/100

전체 평균점수 : 78.3

JMS(Just Movie Score) : 85/100

 

관객을 심리적으로 옥죄어 오는 연출이 탁월하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영화. 무엇보다 공포영화이면서 공포영화의 장르를 파괴하는 공포영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 

 

*JM은 필자가 왓챠에서 만점을 준 영화를 기준으로 선별,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JMS란 별 5개 영화 중 최하점을 0점 최고점을 100점으로 환산하여 선정한 점수입니다.

 

바바둑 스토리

출산 차 병원으로 가던 중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당시 태어난 아들 ‘사무엘’과 힘겹게 살아가는 워킹맘 ‘아멜리아’. 과행행동장애가 있는 아들은 퇴근하고 돌아온 그녀에게 아빠의 창고에서 발견한 그림책 ‘바바둑’을 읽어달라 조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동화책이 아닌 악령의 저주가 담긴 금서임이 드러나고, 바바둑은 두 모자의 외롭고 고단한 일상 속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결국 아멜리아는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바바둑과 죽음을 넘나드는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데…

 

[네이버 영화에서 발췌]

 

바바둑 명장면

 

명장면

오락적 요소만 가미된 대다수의 공포영화와 바바둑을 구분 짓는 결적정 장면은 마지막 엔딩 부분에 존재한다. 바바둑이 독창적이고 섬새한 설정들로 가득 찬 영화라 해도, 영화 엔딩씬에서 아멜리아가 바바둑을 물리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났다면 결국 바바둑도 조금 흥미로운 공포영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바바둑이 단순한 괴물이 아닌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찬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멜리아가 바바둑을 지하실에 가두어 키우는 엔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바둑 스틸컷

 

스틸컷1

1. 어머니와 인간 그 사이
거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아멜리아 역시 자신의 아들 사무엘을 사랑한다. 하지만 모든 어머니는 어머니 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고 하지만 그 위대한 사랑이 온전히 발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하지만 남편의 부재와 사무엘의 정서불안은 그녀가 자신의 모성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스틸컷2

2. 애완견 벅시
벅시는 아멜리아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바바둑의 존재에 대한 복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아멜리아가 바바둑에게 점령당해가자 자신의 어린 주인 사무엘을 지켜주는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여담이지만, 보통 영화에서 애완동물로 나오는 캐릭터가 일정 부분 이상의 비중을 차지할 경우 작중에서 죽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바바둑은 과감하게 귀여운 벅시를 죽인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엔딩에 씬스틸러 벅시가 없는 건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다. (물론 시체가 되어 등장하긴 하지만...;;)

 

스틸컷3

3. 벅시의 시체를 양분으로 자라는 검은 장미
엔딩씬에서 벅시는 아멜리아 집 마당에 묻히고 그 위로 아멜리아가 검은 장미를 키우는 모습이 나온다. 검은장미는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 또는 당신은 나에게 벗어날 수 없어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벅시를 양분 삼아 자라는 검은 장미는 아멜리아가 바바둑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벅시와 바바둑이 공존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멜리아와 사무엘은 인간이기 때문에 바바둑의 존재(뒤에서 서술하겠지만 사실 바바둑은 아멜리아의 다른 이면이자 억눌린 감정이다.)를 인정하고 그것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지만, 아무리 사랑스러운 존재라 해도 애완견인 벅시는 인간이 아닌 이상 바바둑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바둑 리뷰

 

리뷰1

1. 미스터 바바둑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바바둑은 일반 공포영화에 나오는 평범한 괴물이 아니다. 물론 꿈보다 해몽이라고 바바둑을 정체불명의 괴물 그 자체로 상정해도 영화 관람 자체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보다 깊이 있는 영화 관람을 위해서는 괴물 같은 바바둑 그 너머에 있는 바바둑의 본모습을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바바둑과 아멜리아의 관계, 바바둑을 대하는 사무엘의 모습에도 주목해야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바바둑은 아멜리아의 억눌린 감정이다. 아멜리아의 억눌린 감정은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억눌린 감정 그 첫 번째는 남편의 부재에서 오는 내면의 고독과 사회의 시선에서 오는 수치심과 분노이다. 억눌린 감정 그 두 번째는 탄생과 함께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무엘에 대한 양분된 감정, 사무엘의 행동장애로 인한 생겨나는 다양한 스트레스이다. 아멜리아의 억눌린 감정이자 제2의 인격인 바바둑이 아멜리아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에서 억눌린 감정 첫 번째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고 억눌린 감정 두 번째가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미스터 바바둑' 그림책을 아멜리아에게 전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무엘이다. 결국 극 중에서도 바바둑을 불러낸 장본인은 사무엘인 것이다. 바바둑을 불러낸 장본인이 사무엘이라면 아멜리아가 바바둑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촉진제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다. 바바둑은 항상 남편의 모습을 빌려서 나타난다. 아멜리아가 바바둑을 물리치고 나서도 힘이 빠져 바닥에 쪼그라든 바바둑에게 연민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 이유이다. 사실 극 중에서 바바둑이 끝내 사라지지 않고 아멜리아 집 지하실에 숨어 살게 된 이유도 아멜리아가 바바둑을 완전히 물리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극 중에서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바바둑은 몰아낼 수 없어." 바바둑은 아멜리아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바바둑은 아멜리아의 억눌린 감정으로 평상시에는 지하실에 숨어있지만, 세상과 아멜리아의 관계, 혹은 아멜리아와 사무엘의 관계 속에서 억눌린 감정이 폭발할 때 언제든지 지하실을 박차고 나와 아멜리아를 지배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바바둑의 모습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바바둑은 마술사 같은 느낌의 복장을 하고 나타나며 TV에 등장하는 바바둑의 모습도 어쩐지 마술사를 연상시킨다. 마술사는 사무엘의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사무엘이 아멜리아에게 장난을 칠 때 하는 복장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술사 같은 모습을 한 바바둑은 사무엘에 대한 아멜리아의 부정적 감정, 혹은 공포를 나타낸다. 마술사 복장을 한 바바둑은 아멜리아에게 공포와 불쾌감을 주는 대상이었지만 바바둑이 남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순간 아멜리아는 바바둑에게 몸을 점령당하고 만다. 

 누군가 말했다. 상처(트라우마)는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2. 바바둑의 참신함
바바둑은 공포와 가족드라마, 심리스릴러 요소가 혼합된 장르의 영화이다. 특히 싱글맘으로서 행동 장애가 있는 사무엘을 홀로 키우는 아멜리아가 경험하는 고충과 스트레스를 서스팬스, 히스테리 적으로 연출한 부분이 흥미롭다. 특히나 아멜리아가 느끼는 부정적 감정과(고독, 우울, 사무엘에 대한 염증과 사랑, 바바둑에 대한 공포) 히스테릭한 감정을 관객에게 효율적이고 섬세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의 보편적 장점들을 차처 하고, 바바둑이라는 영화가 갖는 희소성은 단순히 '자신의 아이를 혐오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탁월하게 표현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공포영화의 작동원리 자체를 부정하는데서 온다. '괴물'을 영화라는 안전한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면 우리는 냉혹하고 불합리한 현실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모순적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서 오는 '안도감' 때문이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공포영화는 이 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바바둑은 자신이 포함된 장르의 정의 자체를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했다.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되어 가는 모자를 보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공포영화를 보고 난 후의 안도감 대신 현실의 냉혹함과 부조리를 느끼게 되고 이것은 무척 신선한 충격이다.

3. 바바둑의 연출 스타일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아멜리아의 고통은 대표적으로 남편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에 대한 수치심, 사무엘의 정서적 불안에서 기인한 수면부족, 성적 욕구불만, 경제적 빈곤함에서 오는 스트레스,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차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이다. 이러한 아멜리아의 고통들이 관객에게 전달되면서 관객 또한 강한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된다. 이런 식의 연출 스타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독은 '대런 애러노프스키'이다. 그의 영화 '레퀴엠'은 관객을 멘붕으로 몰고 가는 스타일의 영화 중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영화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제일 효율적인 연출 수단이다. 상대방을 제일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역지사지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주관이 배제된 남의 처지란 존재할 수 없다. 남의 처지가 되어보는 것 자체가 주관적 행위기 때문이다.) 진정한 역지사지는 대런 스타일의 연출 방식을 가진 창작물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리뷰4

 

4. 사무엘
물론 바바둑에서 제일 중요한 등장인물은 아멜리아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영화의 주인공은 사무엘이 된다. 처음에는 악역에 가까웠던 사무엘은 바바둑이 아멜리아의 몸을 점령하자 바바둑에 맞서 싸우고 아멜리아가 바바둑을 물리칠 수 있도록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사무엘은 언젠가 바바둑이 등장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바바둑이 등장하기 전부터 사무엘은 자신이 엄마를 지킬 거라고 말하며 휴대용 투석기를 만들고 석궁을 준비한다. 영화 초반부에는 사무엘의 행동장애로 인한 말썽으로 보였던 행동들은 결국 아멜리아를 지키기 위한 훈련이었던 것이다. 바바둑을 아멜리아의 억눌린 감정으로 해석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사무엘은 아멜리아가 언젠가 감정적으로 무너질 것을 본능적으로 예견하고 있었고(사실 본인의 지분이 크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멜리아를 정신적으로 지지하는 경험을 통해 사무엘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아멜리아 또한 자신의 상처(트라우마)를 대하는 방법을 배워가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불 수도 있다. 바바둑이 아버지의 형상으로 나타나자 아멜리아는 바바둑에게 굴복당하고 사무엘은 이때부터 바바둑(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멜리아의 몸을 빌린 바바둑)에게 무력을 행사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미 영화 초반부에 사무엘이 아멜리아에게 성적인 장난을 치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사무엘이라는 캐릭터에서 오이디푸스 신화를 연상할 수 있게 된다.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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