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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젊은 여성을 위한 성공연애 특강]


시장사회는 잔혹하다. 훈련과 학습에 의한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사람, 용모가 빼어나지 않은 사람, 자산이 없는 사람은 시장에서 가치 있게 팔 것이 없기 때문에 빈약한 서비스밖에 받을 수 없다.

- 무라카미 류는 절대 냉혈한은 아니다, 단지 소설이 아닌 곳에서 감상에 젖지 않을 뿐이다.


연애는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가장 살벌한 비지니스다
과거에 여자의 경제활동은 상당히 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 가능한 한 자신을 비싸게 팔기 위해서는, 즉 가능한 한 유리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결혼할 때까지 섹스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윤리가 필요했다. 결혼하지 않고는 인생이 상당히 불리한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결혼 전에 섹스를 허락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 통창력이 부족한 몇몇 윗세대 사람들은 여자들이 성적으로 개방적이 되는 것을 죄악이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글을 소개해 주고 싶다.


innocent라는 단어는 순수, 순진무구라는 뜻도 있지만, 좀 모자란다, 혹은 무지하다 라는 의미라도 쓰인다.
생각해보면, '순수'한 성인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거짓말도 하고, 싫은 것을 전혀 안 할 수 도 없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일 테니까. 이렇게 우리는 인간의 싫은 부분이나 약한 부분, 추한 부분을 통해 성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좌절이 없는 경력은 있을 수 없고, 타인으로부터 상처나 배신을 당하지 않는 사회생활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재능에 대한 절망 같은 자기 자신에조차 환멸을 느끼고 사는 게 우리의 인간사다. 비록 그럴지라도 미래를 위해 긍정적으로 노력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 그러면서도 순수한 사람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다양한 경험도 갖고 있고, 상처나 좌절 또한 경험했고, 기본적으로는 긍정적인 사람

-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인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나는 인생에 고뇌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뇌가 인간을 강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고뇌 따위는 장말 싫다.
하지만 정신적인 고뇌를 견뎌낸 사람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인생을 보낸 사람보다는 확실히 더 낫게 보이는 때가 있다. 자신의 삶이 무료하다는 것도 모르는 채 평온하다는 착각으로 안일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최악인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 자신의 삶이 무료하고 정체되어 있음에도 그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볼품없는 사람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상징적인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는다는 행위는 외부 사회와 접촉하고 만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선이 밖으로 향하지 않으면 뭔가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자신 속에는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은 자신의 바깥에 있다.

- 나도 기본적으로는 내향형이라 뭔가 몰두하거나 멘탈이 좋지 못할 때는 내 안으로 파고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은 항상 자신의 바깥에 있다. 는 이 말은 특히 나에게 정말 귀감이 되는 말이다.


의존이라는 것은 이른바 기둥서방처럼 여성에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의존이고, 세 걸음쯤 물러서서 아무 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의존이다. 한번 섹스를 했다고 해서 자신의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것도 의존이고, 지배하려고 하는 것도 의존이다. 상대의 시간이나 자유를 침해하고, 상대의 시간이 나 자유를 빼앗고 지배하는 것으로 애정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모두 의존이다.
'회사 나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줘'
'친구랑 만나는 거 취소하고, 오늘 밤은 계속 내 옆에 있어'
'내 말에 말대답하지 마'
'내 앞에서 나 이외의 남자를 칭찬하지 마'
'나랑 함께 죽어줘'
모두 의존이다.
그러나 짜증 나는 일은 예전에는 그것이 '의존이 아니고 애정'이라고 받아들여졌고, 지금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애정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 참고 견디는 것,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는, 예전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확고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희생한다든지, 나를 위해서 인내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타인에게 절대로 그런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또한 타인이 싫어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것도, 거만하게 구는 것도, 명령을 하는 것도, 지배하는 것도 싫다. 마찬가지로 타인에게서 원치 않는 일을 강요받는다든지, 거만 떠는 것을 보게 된다든지, 명령을 받는다든지, 지배받는 등의 일도 참지 못한다.

내가 주류를 혐오하는 것은 진정한 다수파란 존재하지 않는데, 자신이 주류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어떤 한정된 지역에서 , 혹은 한정된 가치관 안에서의 주류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절대적인 주류처럼 착각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비주류로 분류될 가능성 가운데 살고 있다.
따라서 항상 상상력을 발휘하여 비주류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복하지만, 그것은 휴머니즘은 아니다. 우리 자신을 구하기 위한 합리성인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는 항상 뒤바뀐다. 부에 있어서는 해당사항이 적을지 몰라도, 다른 영역에 있어서는 항상 그렇다. 내가 항상 주류에 속해 있을 것이라는 맹신은 항상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낳는다.


여자가 조용히 남자 뒤를 따르는 것을 원하는 남자들은 대개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나 고위 공무원이며, 그들은 사회에 진출한 이후 줄곧 힘 있는 파벌의 선배들이 아껴주는 데서 안정을 얻어 왔다. 지금은 그런 인생의 방식이 쓸모없다고 매스컴이 되풀이하여 방송한다. 그러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면 좋은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런 남자들은 불안감을 힘으로 바꿀 수도 없다. 그런 남자들은 타인에 의지해 안정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귀는 여자나 자신의 아내에게 온순함을 요구한다. 바깥 세계에서는 자신감이 없고 안정감도 없기 때문에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애인이나 아내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만족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런 남자는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다. 그들은 자신의 여자만큼은 자기편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 유형의 남자는 여자가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행동을 보이면 이성을 잃고 화를 내기 십상이다.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존재였던 여자가 온순함을 잃으면 그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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