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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으로 시니컬하고 냉철한 느낌의 무라카미 류 소설 중에서 뭔가 열혈 청춘물?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나는 소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코 가벼운 청출 물 같은 느낌의 소설은 아니다. 기존의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무라키미 류는 보통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코인락커 베이비즈는 트라우마를 가진 남성에 대한 소설이기 때문에 류와는 어울리지 않는 열혈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 본다.

 

그럼 본격적으로 소설의 명대사, 명구절을 감상하도록 하자.

 

기꾸는 달리기 시작했다. 몇 걸음 앞으로 달리고 있는 자신의 분신을 따라 잡으리라 생각했다. 단단한 모래 위를 오른발이 세 번째로 내디뎠을 때 기꾸는 갑자기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열기를 품고 달리고 있던 자신의 분신과 드디어 합치되었다. 자신이 달리고 있는 게 아니라 운반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피부 바로 밑에서 근육이 용솟음쳤다. 전신을 둘러싸고 있던 가시 껍질을 뚫고 나오며 기꾸의 근육은 비로소 자신의 저력에 눈뜨기 시작했다. 전신을 돌고 있던 열기는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오히려 발끝에서부터 새롭게 복받쳐 올랐다. 모래 위를 달리면서 기꾸는 큰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드디어 얻었다'라고 기꾸는 생각했다. '항상 바깥에서 나를 겁주던 거대한 금속의 회전체, 그것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고 그는 생각했다.

- 마지막 구절의 표현이 마음에 든다. 번역이 주는 어색함이 오히려 시적 표현이 되었다.

 

꼬챙이에 끼워진 새우가 숯불 위에서 구워지고 있었다. 수조 안의 물고기들은 전부가 전갱이들이었는데, 헤엄은 치고 있었지만 조명 때문인지 잡아 올린 뒤 한나절은 햇빛을 받은 것처럼 비늘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철계단을 발견한 뒤에도 기꾸는 한동안 희뿌연 수조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죽어가고 있는 전갱이가 두 마리 있었다. 한 마리는 등뼈가 굽어 있는 것이 필시 태어날 때부터 기형인 것 같았다. 성장해 가면서 아가미가 압박을 당하고 있는 까닭에 힘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동료 물고기들한테 당한 것일까, 배나 가슴지느러미를 뜯겨 몸이 누더기가 된 채 내장을 들어내고 수조의 구석을 작게 돌고 있다. 배에서는 조금씩이긴 했지만 피도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물고기의 피는 바닷속에서 회색으로 보이는데, 수조의 물이 뿌연 탓인지 먼지와 구분되지 않았다. <장님 쥐>, 그 글씨는 간판이 아니라 나무문 위에 새겨져 있었다.

- 왠지 모르게 디스토피아 적이고 다크한 느낌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묘사가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우리의 생애가 너무 짧다.

어두운 방에서 어머니는 기침을 뱉어내며 자주 수채화를 그리곤 했다. 니봐는 기꺼이 모델이 되었다. 어머니는 병이 옮는다는 이유로 니봐를 별로 안아주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니봐는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어머니의 시선을 받는 것이 좋았다
어머니는 실물보다 항상 이쁘게 그려주셨다.

- 왠지 서글픈 느낌의 구절

 

니봐는 이 깡마른 아버지가 끔찍하게 싫었다. 아버지가 왔다 갈 적마다 어머니는 반드시 울었기 때문이었다.
니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 아코디언 악사(아버지)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병은 악화되지도 그렇다고 호전되지도 않았다.
니봐가 어머니가 그렸던 수채화의 자신이 입고 있던 새하얀 드레스를 만들 때마다 어머니는 니봐를 칭찬하며 꼭 안아 주었다. 어느 여름날, 어머니는 니봐를 껴안은 채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의 땀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차가운 땀이 닿는 순간 갑자기 니봐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죽고 나면 더 이상 나를 안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라는 예감이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었던 어머니에게 몇 번 안기자 이상하게 흥분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내 몸에 손을 대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망상은 학교에서 더욱 굳어지기 시작했다. 한 남자애가 너무 수줍은 나머지 폭 댄스를 하면서도 자신과 손을 잡지 않을 때면, 역시 그렇구나 라고 생각되어 몸이 오싹해졌다. 어머니가 껴안아줄 때마다 누구도 내 몸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망상은 한층 강렬해졌다.
실로 아이러닉 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니봐는 도쿄에 있는 미션계 사립여고에 입학했다.
그 후 대학에도 진학했다. 학교 축제 때 원피스를 팔고 있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키 큰 그 학생은, "더운데 사이다 마시지 않을래요?"라고 말했다. 그 남학생과 함께 사이다를 마시며 니봐는, '이 남자와 결혼해야지'라고 결심했다. 그날 밤 니봐는 이름도 모르는 그 남자에게 모든 것을 허락했다. 정말로 결혼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결혼하고 싶다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꼬리를 쳐댔다. 그 뒤로는 두번 다시 몸을 허락하지 않고, 자신이 스위스의 오토크츄울상을 받았기 때문에 내 남편이 되는 사람은 고생하지 않아도 될 거라느니, 우리 집은 오까야마에서 커다란 여관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미끼를 던졌다. 그 수법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결국 1년 뒤 결혼에 골인을 한 것이다.
남자는 우람한 근육 외엔 별로 볼 것이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니봐는 그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최초의 남자였을 뿐이다.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는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의 어느 날, 니봐는 가슴에서 작은 몽우리를 발견했다. 유방암이었다. 가슴을 도려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니봐는 울었다. 슬펐지만 자신이 이상한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가슴이 도려내어지고 남편과 이혼하게 되는데도 무엇 때문에 희미한 기쁨의 예감이 용솟음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니봐가 입원해 있는 동안 이혼이 합의되었다. 니봐는 해묵은 망상과 재회했다. '그래 이렇게 보기 흉한 흉터를 가지고 있는 나의 평평한 가슴, 살점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인 이 유방을 누가 만지고 싶어 하겠는가, 아무도 만지려 하지 않겠지!"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아무도 만지려 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은 더 이상 망상이 아니었다. 그건 사실이었던 것이다. 사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며칠 동안 울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하시는 니봐의 가슴에 남은 수술 자국을 가르고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거리감의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여관방에서 어머니의 시선을 받으며 묵묵히 앉아 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 상처를 찢어발기고 나타났다. 바래다주겠다며 함께 택시에 탄 하시가 의자 위에 고꾸라지듯 쓰러져 있다가 힘을 주어 손을 잡았을 때 니봐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지리라고 마음먹었다. 아파트에 데려가 옷을 벗긴 뒤 하시의 온몸을 핥았다. 욕정에 사로잡혀 자신의 가슴을 만지는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발기한 하시가 눈을 떴다. 불을 켜고 가슴을 보여주었다. "부탁이야 쓰다듬어줘." 니봐가 심각하게 말하자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하시는 자신과 니봐의 성기를 확인하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아주 유쾌한 듯한 웃음이었다. "볼썽사납지?" 니봐가 울먹거리며 말하자 하시는 힘 있게 끌어안아 주었다. 살점이 없는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혀를 대기도 하고, 가볍게 깨물거나 비벼대기도 했다. "최고야"
하시는 날 애무해 주었다. 타액과 혀가 내 거리감의 기억을 메워주었다.
니봐는 지금 하시의 무대 의상을 디자인하고 있다. 새하얀 공단 블루종으로 할 작정이었다. 필시 천사의 옷이 될 것이다. 니봐는 두 가지를 동시에 얻게 되어 매우 행복했다. 그건 바로 사랑스러운 천사와 그 천사가 입을 옷을 만드는 꿈이었다.

- 소설에 나오는 조연의 과거 이야기 만으로 하나의 단편이 된다. 무라카미 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참신하며 손으로 그려질 정도로 현실감이 느껴지는 디테일이 존재한다.

 

하시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주변에 막을 쳐 놓았다.
그 막은 견고하여 누구의 비난도 관심도 하시에게 닿지 못하게 하는 막이였다. 하지만 하시는 나에게만큼은 그 막을 치지 않았다. 하시의 막 안쪽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은 나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시는 내 곁에 없다. 지금은 니봐라 불리는 이 여자가 하시의 막을 온전히 대신해 주고 있다.

아네모네가 면허증을 제시하고 필요한 서류에 사인하는 동안 기꾸는 가스 봄베가 들어있는 가방을 오토바이의 짐칸에 묶었다. 아무리 봐도 자네들 보기 좋게 탔는걸. 파도타기 좋아하나? 하얀 옷으로 통일하고 있는 걸 보니 서핑 베이비스인 모양이지? 점원이 돈을 세면서 그렇게 묻는다. 아니 그렇지 않아. 기꾸가 헬멧의 턱끈을 묶으며 말했다. 우린 코인로커 베이비스다

- 이러한 낯간지러운 구절은 무라카미 류 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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