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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스]


나는 선생님에게만은 어리광 부리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어리광 부리는 나를 상상할 수 없고 나의 어리광을 허락하는 사람도 싫어요. 선생님은 늘 말했어요, 어리광은 좋은 거야 레이코, 사람은 어리광도 부릴 줄 알아야 해, 어리광 부리는 방법을 모르는 인간은 요컨대 비참한 유년기를 보낸 놈이야, 어리광이란 것은 외부와의 친화성이니까 말이야, 사실 그게 없으면 우린 살아갈 수 없는 거야. 사회적인 어리광을 말하는 게 아니야, 개인적인, 어느 특정한 개인에 대해, 닫힌 관계성 속에서의 어리광 말이지. 그것은 친화력의 기본이야, 그걸 모르는 놈은 먼 길을 돌아서 고생하면서 전혀 다른 친화력을 찾아야 하는 거야, 불쌍하지. 네가 그런 불상한 놈들 사이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텐데 하고 난 늘 생각하고 있어, 선생님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선생님 곁에 있을 때는 어리광 부리고 싶지 않았아요. 선생님이 나의 어리광을 허락한 순간에 나는 선생님을 경멸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 매끄럽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그것을 가식이라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무라카미 류의 말대로 그것은 친화력이고 전혀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어리광을 부릴 것이다. 


레이코 이 세상의 일부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소비하지, 그 밖의 대부분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기를 포기하기 위해 인생을 소비하는 거야.

 

- 흔히 세상에 치인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내가 되지 못한다 해도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인생을 소비하겠다.


자신의 힘으로,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야, 자신의 힘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좋아해. 이 사람은 오로지 그것만을 보람으로 살아가고 있어.

그럼 넌 정말 너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거야, 네가 순수하고 완전한 마조히스트라는 것을 말이야, 넌 어리광과 자기 처벌의 완전한 결합형이야. 물론 대부분의 마조히스트 여자는 어리광과 자기 처벌을 동시에 가지고 있긴 해. 어리광형이란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래도 이런 파렴치한 나를 사랑해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여자야, 자기 처벌형이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의식을 잃어버릴 때까지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를 원하는 여자야. 벌을 받은 후에 반드시 그게 좋다고 생각하면 어리광형이 되는 거지, 자기 처벌형은 문신이나 보디 피어스로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경우는 있어, 자기 처벌형은 자신의 어리광을 자신이 용서할 수 없는 어리광형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리광형은 자기 처벌의 욕망을 자원봉사로 승화하는 타입이라고도 할 수 있어. 자기 처벌형보다 어리광형 쪽이 타인과의 관계에 열심히야. 제멋대로 구는 게 바로 어리광형이야. 레이코 짱은 말이야, 완전히 그 두 가지가 마치 DNA 모델처럼 나선형으로 얽혀 있어,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마치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말이야, 그래서 얼핏 보면, 대단히 강한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그건 거의 완벽하게 그 두 가지가 상호 보완 관계에 있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자기 처벌의 욕구가 어리광을 허락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미치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구체적인 자기 처벌의 방식을 정신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어쨌든 그것은 두 가지 다 같은 자기 비하라는 뿌리에서 나온 거야. 자기 평가가 낮은 여자는 거의 남자와 있어도 마음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오르가즘을 못 느껴 불쌍하게도.

 

- 보통 사람들에게 SM은 조롱의 대상이지만, 무라카미 류는 SM에 대해 진지하다. 그 속에서 구원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본인도 그 가능성을 열어둔다. 하지만 감상에 젖지는 않는다.


바깥에 있는 메이드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노크를 할 정도로 큰 소리로, 핥아 줘! 하고 말하지 않으면 핥아 주지 않아요, 내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어요, 혀가 닿는 순간 거의 0.00001초 만에 나는 올라 버려요. 그리고 오줌을....
레이코와 이런 짓을 하는 건 나뿐이야, 앞으로도 레이코와 이런 짓을 할 사람 또한 나뿐일 거라는 그런 슬픈 생각도 들어. 그게 내 오줌을 마시는 이유인가요? 이유의 일부라고 해야겠지. 일부? 아마도 백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을 거야, 그 밖에는? 내가 그렇게 물으면 선생님은 너무도 우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거예요, 네 몸에서 오줌이 나올 때, 네가 정말로 마음을 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오로지 그때만이 네가 마음을 푹 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 외설인가 외설이 아닌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 등장하는 성적 표현들은 오히려 야한 느낌이 없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성적 묘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라기보다 의미를 찾아가기 위한 치열한 행위로 보인다.

위의 문장에서 나는 약간 서글픈 마음마져 들었다.


상처를 치유한다는 유행을 난 좋아하지 않아. 상처는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거야. 난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다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 마음에 상처는 그 사람 자체라 해도 어긋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처는 사람의 방어기제를 만들고 방어기제는 곧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이다. 따라서 상처를 치유할 순 없다. 그것으로 부터 자유러워 지거나 그것을 대하는 방식(스킬)을 익힐 뿐이다.

아버지가 언제 우리를 때릴 것인지만을 생각 하면서 나는 소년기를 보냈어요. 이윽고, 아버지가 때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놓였어요. 뭔가 무서운 일이 시작될 거라는 상상이 공포를 불러일으켜요. 실제로 그것이 일어나면 공포가 아니에요.

내가 가장 두려워 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것은 무엇보다 섹스가, 성적인 것이 두 사람에게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중요성을 잃게 된다는 것, 선생님에게 내가 그 밖의 다수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린다는 것, 많은 여자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린다는 것, 내가 지금까지, 선생님을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간다는 것,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 힘도 배경도 없는 보잘것없는 여자로 돌아간다는것, 내 몸에서 , 발톱을 떨리게 하면서 솟구치는 불안과, 동시에 환희가 일어났어요. 이것으로 끝장이다, 그러므로 빨리 일어나라고 속으로 외쳤어요. 상상할 때의 공포가 현실에서 일어나면 결코 공포가 아니라고 나의 온몸이, 뇌의 기억 부위가 알고 있었고, 나는 미칠 것 같은 불안의 임계점에서 몸 속으로 파고드는 그 그립던 환희를 또렷이 느끼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우리를 때리기 시작하면,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포자기와 함께 안도감을 느끼면 그만이었어요, 선생님이라 불러왔던 그 남자는 나를 때리지 않았어요, 나를 멀리하려 하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어요, 나에게 의존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 남자가 한 일이란 오로지 하나, 진실을 고하고, 거기에 대해 반응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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