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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신은 광기를 띠고 병들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이 광기를 띠고, 병들어 있는 것일까?

영화는 너무 뻔하다 싶을 만큼 진부한 줄거리로 평범하게 진행되어갔다. 대사도 평범할 뿐만 아니라 음악도 평범했다. 타임캡슐에 넣어서 ‘평범’이라는 딱지를 붙여 땅에 묻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영화였다.

그건 단지 꿈일 뿐이야 꿈은 과거에서 오는 거야. 미래에서 오는 건 아니지. 꿈이 당신을 속박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꿈을 속박하고 있는 거지.

- 맞다. 우리가 꿈을 속박하고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꿈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두려워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꿈은 나의 과거에서 온다.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의 동반자이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것은 멀리서 보면 유성처럼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인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두 개의 위성이 그려내는 궤도가 우연히 겹쳐질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죠. 또는 마음을 합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잠깐, 그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의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연소되어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인공위성에 비유해 이토록 문학적이고 통찰력 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특히 연인관계에서 우리는 잠시 궤도가 겹쳤을 뿐인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수많은 우연이 산처럼 쌓여서 생겨난 것이다. 인생의 어떤 과정을 지나면 우리는 어느 정도 산처럼 쌓인 우연성의 패턴을 소화 시킬 수 있게 되며, 그 패턴 속에 뭔가 개인적인 의미성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약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것을 이유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역시 근본적으로는 우연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우리가 그 우연성의 영역을 넘어설 수 없다는 근본적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유라는 것은 원래 형태가 없는 것에 대해 억지로 만들어 붙인 일시적인 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언어로 나타낼 수 있는 뭔가에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겠는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에 감추어져 있지 않을까?

- 우연을 두려워 하지 말자. 모든 것에 이유를 찾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생각하다 죽는 수밖에 없다.


10분이면 늑대는 완전히 지쳐버린다. 그 폐는 이미 파열 직전 상태인 것이다. 늑대는 멈춰 서서 어깨로 크게 숨을 들이쉬고 각오를 한 듯 우리 쪽을 빤히 응시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늑대는 알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선택의 여지라는 것이 없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촉만드라 중위는 운전사에게 지프를 멈추라고 하고 라이플의 총신을 몸에 고정시켜 조준을 늑대에게 맞추었다. 중위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동안 늑대는 이상할 정도로 맑은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늑대는 총구를 응시하고 나를 응시한 후에 다시 총구를 응시했다. 갖가지 강렬한 감정이 하나로 뒤섞인 눈이었다. 공포, 절망, 혼란 , 곤혹 , 체념.......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무엇.
그 늑대는 한방에 쓰러졌다. 한참 동안 경련을 했지만, 이윽고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몸집이 작은 늑대였다. 새끼를 위해 먹이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어깨 바로 위에 총탄이 명중해 있었다.

- 생명의 생동감과 죽음의 무거움이 공존하는 신비한 글귀다. 신비한 만큼 강한 에너지를 가진 글이라 이 글을 읽고 눈을 감으면 글 속의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저어 주인님 산책이라도 나가요 오늘 밤은 달이 참 아름답네요 하고 개가 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편만 쓰면 사람이 귀여워진다.


가능성이 주위에 충만해 있을 때, 그것을 그냥 두고 지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

형태가 있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언젠가, 어디선가, 홀연 없어져 버린다고, 그것이 인간이든, 물건이든 형태가 없는 것도 언젠간 사라진다. 남는 것은 기억뿐이야.

- 맞는말이지만,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도 있다. 사진을 자주 찍어야겠다.


너 나를 얼마나 좋아해?
한밤중의 기적 소리만큼
어느 날, 밤중에 문득 잠이 깨지.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어. 아마 두시나 세시쯤일 거야. 하지만 몇 시인 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한밤중이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이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한번 상상을 해봐. 주위는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소리도 전혀 안 들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시계가 멈춰버렸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는 갑자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장소로부터, 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고, 격리되어 있다고 느껴. 이 넓은 세상에서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하고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돼. 설령 내가 이대로 사라진 대도 아무도 모를 거야.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가장 괴로운 일 중에 하나일 거야. 정말이지 그대로 죽어 버리고 싶을 만큼 슬프고 괴로운 그런 느낌이야.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 아주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야. 도대체 어디에 철도가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만큼 멀리서 들려오거든.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야. 그렇지만 그것이 기차의 기적 소리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어. 틀림없어.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기적 소리를 듣지 그리고 나면 내 심정의 통증은 멈추고 시곗바늘도 움직이기 시작해. 그래 우린 이어져 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도의 눈물이 흐르지. 모두가 그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야. 들릴 듯 말듯한 작은 기적소리 덕분이라고 나는 그 기적 소리만큼 너를 사랑해.

- 사랑을 속삭일 때는 하루키 처럼, 낭만적이고 섬세하며 세부적으로..


술을 마시다가 수첩을 보며 누군가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마땅한 상대를 찾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서글펐다. 자신을 둘러싼 벽을 무너트릴 수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방금 전까지 그 벽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그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나고야를 지날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어두운 유리창에 손을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도쿄를 떠날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숱한 장소에 내리는 비를 생각한다. 숲 속에 내리는 비와 바다 위에 내리는 비, 고속도로 위에 내리는 비와 도서관 지붕 위에 내리는 비, 그리고 세계의 맨 끝에 내리는 비에 대한 생각을.
눈을 감고 전신의 힘을 빼고, 딱딱하게 굳은 근육을 푼다. 열차가 달리며 울리는 단조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거의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자네는 두려워하고 있어. 예전에 바티칸 사람들이 지동설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천동설에 절대로 오류가 없다고 믿었던 건 아니야.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것이 몰고 올 새로운 상황이 두려웠을 뿐이지. 거기에 맞춰 자신들의 의식을 재편성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던 것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가톨릭 교회는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지동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자네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오랫동안 몸에 걸쳐온 단단한 방어의 갑옷을 벗어던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달의 반짝임을 무심히 바라보는 사이에 덴고안에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기억 같은 것이 차례차례 불려 나왔다. 인류가 불이며 도구며 언어를 손에 넣기 전부터 달은 변함없이 사람들 편이었다. 그것은 하늘이 준 등불로서 때로는 암흑의 세계를 환하게 비추어 사람들의 공포심을 달래주었다. 그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시간관념을 부여해 주었다. 달의 그 같은 무상의 자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대부분 지역에서 밤의 어둠이 쫓겨나 버린 현재에도 인류의 유전자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집합적인 따스한 기억으로.

- 달에 대한 지극히 아름다운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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