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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푹 빠져 살았다.

그의 낭만적 허무주의는 마약과도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푹 빠진 덕분에 20대에 잊지 못할 사랑을 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책을 읽다 메모를 할 때 최소한 소설의 제목은 기록해두지만, 과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는 그냥 두서없이 메모하기만 해서 그의 작품별로 정리되어 있지 못한 점 양해 바란다.

 

왜 그렇게 책만 읽는 거야
플로베트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럼 살아있는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다는 말이야?
살아있는 작가는 아무 가치도 없으니까
어째서?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 하루키의 소설에는 죽음에 대한 묘사가 많다 위의 문장은 죽음에 대해 낭만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건 무척 불쾌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인의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대한 두 가지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 대면서 그리고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 하루키의 이런 역발상이 참 매력적이다.

 


사람은 왜 죽는 걸까.
진화하기 때문이지 개체는 진화의 에너지를 견뎌낼 수 없어서 세대교체를 하거든, 물론 이건 하나의 가설이지만.
왜 진화 하는 거야
그것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 다만 확실한 건 우주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야. 거기에서 어떤 방향성이나 의지가 개재되어 있느냐 하는 건 제쳐 놓더라도, 우주는 진화하고 결국 우리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아.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현학적인 느낌인데 메모할 때는 멋있어 보였 나보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 위에 소리 없이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난 나의 나약함이 좋아. 고통이나 쓰라림도 좋고 여름 햇살과 바람 냄새와 매미 소리, 그런 것들이 좋아 무작정 좋은 거야 자네와 마시는 맥주라든가.
쥐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모르겠어.

-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이다. 하지만 뭔가 그의 글에는 낭만이 있다.


난 이렇게 생각해. 우리는 모두 옛날에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런데 어떤 계기로 그 일을 전부 잊어버리고 이렇게 사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야.

- 클리셰 같은 느낌도 있는 문장이지만, 그의 작품에 신비감을 주는 문장이다.


거울을 바라보는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객체로 거울 속의 나는 나의 잔영이라 생각했지만 거울 속의 내가 자유의지를 가진 객체이며 그것의 잔영인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거울 속의 개체의 잔영일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거울 앞에서 자유의지로 귀를 만진다. 하지만 그것은 거울 속 나의 의지의 반영일 수도 있다.

- 이 문장이 인상적이라 이 발상을 바탕으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그녀가 그 전화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거기 있었다. 나는 전화벨이 스물다섯 번 울린 뒤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 또다시 천천히 다이얼을 돌렸다.

- 시각적으로 상상하면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영화 <나쁜 피>가 연상된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이다.


진짜 아픔보다 아픔을 상상하는 게 더 괴로워.

그녀는 내가 말을 시작할 때면 어김없이 오른쪽 귀를 기울여 내 쪽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미묘한 감동을 받았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던 그녀는 당황하여 오른쪽 귀를 나에게로 향했다.

- 실제로 이런 상황에 있다면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여자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


유령은 육체에 대한 안티테제(대립되는 이론)라 생각하기 때문에 쉽사리 그 존재를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흡혈귀란 것은 육체를 축으로 삼은 가치의 전환이므로 그 존재를 인정하기는 힘들다. 그럭식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 이제는 너무 현학적으로 느껴져서 좋아하지 않는 문장.


어차피 우리는 우주의 진화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진화에 어떤 목적성이 있는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체 단지 그 안에 속해 있을 뿐이다. 진화의 에너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이란 결과물을 남긴 체.

- 허무주의


얼마큼 좋아요? 온 세상 숲에 있는 나무가 전부 쓰러질 만큼 멋져. 네가 입는 것은 무엇이든 좋고, 네가 하는 일도, 말하는 것도, 걸음걸이도, 술주정도, 무엇이든 좋아해

- 이런 문장들 때문에 하루키는 여성팬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여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하루키의 이런 문장이 좋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으며, 그때 내 곁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아름다운 한 여인에 대해 생각했고, 나와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는 무엇을 보든, 무엇을 느끼든, 무엇을 생각하든, 결국 모든 것은 부메랑처럼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그런 나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몹시 복잡한 곳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주위의 풍경에 마음을 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 하루키의 초기작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문장으로 기억한다. 청춘을 이보다 완벽히 표현하는 문장은 아직 보지 못했다.


모두가 똑같은 일들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계속되는 기시감, 거듭 반복될수록 나빠진다.

태양 빛은 천만년이라는 세월을 쉼 없이 날아와 내 눈꺼풀 위에도 도로변에 힘겹게 자리 잡은 잡초 하나도 빼놓지 않고 비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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