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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지 나는 고독에 고통을 덜 느끼도록 훈련되었고 또 선천적으로 큰 거부감이 없을 뿐이다.

- 하루키의 소설에는 고독에 대한 글들이 많다.


그들은 기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노상 웃음을 띠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웃는 얼굴은 스물다섯 종류 가량 사용할 수 있다. 정중한 냉소에서 적당하게 억제된 만족의 웃음까지. 그 웃는 얼굴의 단계별 변화에는 넘버 1에서 넘버 25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그런 것들을 그들은 상황에 따라 골프 클럽을 골라잡듯 분간해 사용한다.
“죄송합니다.”라는 그는 웃는 얼굴은 넘버 16으로 바꿔서 대답했다.

- 이것이 하루키의 새련된 유머?

결국, 그대로 깊이 잠들고 말았다. 나의 후회는 대체로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자, 그럼 이제부터....... 그럼 이제....... 그럼 이제....... 하지만 그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았다. 사고는 그 무엇과도 이어지지 않은 체 무한의 공간을 방황하고 있었다. ‘일단 한숨 자고 나서 생각해 봐야겠다.’ 하지만 아침이 올 때까지 확실히 깨어있되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전화는 언제 울리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가능성만이 시간을 새긴다.

멍멍이와 고양이 나는 급한 대로 이름을 붙였다.

- 내 기억에는 나름대로 진지한 대목에서 나온 문장이다. 어떤 형사와 그의 조수가 갑자기 주인공을 찾아갔을 때 나오는 문장인데 오글거리는 듯 하지만 어쩐지 하루키의 단편이나 수필을 생가 각하면 납득이 간다.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없을 턱이 없겠지. 대체로 골프를 쳐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두 골프를 싫어해요. 그렇게 돼 있어. 솔직히 말해도 돼.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으니까” “좋아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라고 나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왜” “모든 게 우습게 느껴져요.”라고 나는 말했다. “거창한 도구라든지 깃발, 입는 옷이나 신발, 웅크리고 앉아 잔디를 살펴볼 때의 눈매나 귀를 기울이는 모양 따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귀를 기울이는 모양?”이라고 그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냥 한 말이에요. 의미는 없어요. 다만 골프에 수반되는 모든 게 마음에 거슬린다는 것뿐이에요. 귀를 기울이는 모양이라는 건 농담입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마키무라 히라쿠는 또 잠시 공허한 눈으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는 약간 특이한 편인가?”라고 그가 물었다. “특이하지 않아요.”라고 나는 말했다. “보통 인간이에요, 단지 농담이 재미가 없을 뿐입니다.”

-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화는 어딘가 현실감이 소거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골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등장인물의 대화이지만 어딘가 그들의 대화에선 현실감이 없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잠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를 방영하고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중대하고 충격적인 소식들이었다. 신종 바이러스의 높은 전염성, 사이코패스의 동기 없는 살인, 하지만 무엇하나 와 닿는 것은 없었다. 다 나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딱히 뉴스를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텔레비전을 켜 두고 싶었을 뿐이다. 뭔가 현실적인 것과 이어져 있다는 표시로...

- 이 글을 읽을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상당히 공감이 가는 문장이다. 이제 우리는 유튜브 (특히 무도 스페셜) 같은 것을 틀어놓고 과거를 회상한다. 또한 이를 통해 남들과 이어져 있다는 것에 위로를 느낀다. 댓글들을 읽으며 타인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다.


여기 있으니까 어쩐지 시간이 정지해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나요? 유감스럽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지. 시간은 자꾸 지나가지 과거가 불어나고 미래가 줄어가거든. 가능성이 줄어들고, 회한이 늘어나는 거야.

- 하루키의 회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문장.


“왜 그럴까?”라고 아메는 말했다. 공중에 무엇인가를 오뚝하니 띄워놓고 간단히 그것을 바라보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잠자코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왜 나와 함께한 남자들은 모두 못쓰게 되는 걸까? 왜 모두 이상한 쪽으로만 가버릴까? 왜 내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블라우스 옷깃에 달린 레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레이스는 격이 높은 동물의 청결한 내장 주름처럼 보였다.

- 등장인물이 입은 옷의 레이스를 보고 격이 높은 동물의 청결한 내장 주름처럼 보인다고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마치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자전을 중지하고 있는 행성처럼.

그녀들 모녀와 식탁을 함께하는 일은 나로서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멍한 눈을 한 어머니와 무감동한 딸, 사자(死者)의 흔적, 무거운 공기, 영향을 주는 자와 영향을 받는 자, 침묵,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밤. 그런 정경을 상상하기만 해도 위가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나열들은 매력적이다. 그것이 상표의 나열이든, 묘사던 간에


특별히 해를 끼치는 영화도 아니니까. “해조차 끼치지 않는다고”

“초콜릿을 좋아 하지 않아요?”
“흥미를 느낄 수 없어.”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단지 흥미를 가질 수 없어.” “이상한 사람.” “초콜릿에 흥미를 가질 수 없다니, 정신에 이상이 있어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런 경우가 있다고, 너는 달라이 라마를 좋아하니?”
“뭐예요 그건?”
“티베트에서 가장 뛰어난 승려야.”
“몰라요, 그런 건”
“그럼 넌 파나마 운하를 좋아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혹은 넌 날짜 변경선을 좋아하니 싫어하니? 원주율은 어때? 독점금지법은 좋아해? 1976년 10월 8일은 좋아해 싫어해?
“그만해요, 나원. 정말 어이가 없어. 잇따라 잘도 생각해 내는군요. 알았어요, 잘. 아저씨는 초콜릿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단지 흥미를 가질 수 없을 뿐이다, 이 말이죠. 알았어요”
“알아주면 됐어.”
- 현실에서 초콜릿을 좋아하냐고 물어봤을 때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한다면 그는 평생 친구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다면 왠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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