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의경계 명대사, 명문장, 코멘트 4편
§형사가 하는 작업이란, 사막에서 한 알의 보석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그 괴로운 작업을 통해 만인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과거라는 불확실한 사진을 형체로 만든다. 그런데 탐정은 보고 온 듯한 말투로 자기 혼자만의 공상을 읊으며 범인을 특징짓는다. 사막 한가운데서 보석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범위 내에서 사건을 납득시킨다.
온갖 상황을 상정하여 모든 것을 평등하게 평가하면서 하나의 해답을 이끌어내는 범인과 섬광 같은 발상을 진실이라 여기고 유일무이의 해답을 내는 천재.
확실히 진실 대부분은 탐정밖에 도달할 수 없는 발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발상이 빈곤한 것은 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후자 쪽이니까.
천재라는 것은 결국 자신밖에 상대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하다고 한다. §
코멘트
- 왠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 같다는 느낌이 든 구절입니다. 형사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서 천재는 고독할수 밖에 없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 구절은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라이트노벨과는 어울리지 않은 진지한 고찰을 보여주는 나스 키노코 특유의 문체가 잘 드러난 구절 이기도 합니다.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사진으로든 비디오로든 촬영해 두면 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잊고 떠난 후라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마술사는 그것을 부정했다.
그건 영원이 아니야. 외계에 남긴 것은 영원히는 남지 않아. 물론, 인간의 기술이라면 언젠간 어떤 사고를 당해도 파손되지 않는 ‘매체’를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물체 자체가 불변하는 것이지 우리가 불변하는 것은 아니야. 물체는 관측자가 있을 때 비로소 의미라는 것이 부여돼. 설령 물체 자체가 불변하더라도, 그것을 관측하는 자의 인상이 불변이 아니라면 ‘영원’은 아닌 거야.
너는 어제 본 것을 오늘 보았을 때 어제와 똑같은 심정으로 관측할 수 있냐? 그래, 못할 거야. 관측자의 마음은 언제라도 변할 수밖에 없어. 새로운 물체는 낡게 되고, 멋진 것도 색이 바랜다. 물체 자체는 변하지 않는데, 우리 마음이 물체의 가치를 바꿔 버리는 것이다.
개체가 불변하든 하지 않든,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는 외계의 물체와는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하다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다. 관측자의 인상에 좌우되지 않고, 관측자 그 자체를 지배하는 것. 그것이 유일하게 영원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 완전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관측자 그 자체가 관측되는 대상이 되는 대상이 되면 관측하는 자도 불멸이며, 관측되는 대상도 불변. §
코멘트
- 이 구절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구절이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해서, 요즘에는 그가 어떤 이야기를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비교적 최근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분명 그의 작품관 같은 것이 조금 변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과거 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동일한 주제의식은 ' 뭔가를 애타게 찾아 해메이지만, 그것을 찾았을 때 그 존재는 이미 변해있거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 였습니다. 위의 구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제의식을 라이트노벨 버전으로 쓴 것 같지 않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허무주의를 띌 수밖에 없는 이유, 공의경계가 여타 다들 라이트노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깊이와 무게감을 갖고 있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었습니다.
§기원은 전생을 수없이 거슬러 올라 나라는 존재가 생겨나면서 가지게 된 어떤 방향성이다.
인간이 살 수 있는 1세기 남짓한 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지혜와 의지로는 수많은 세월을 거슬러 내려온 기원을 억 누를 수 없다.
그의 기원은 ‘사냥’ 게다가 그의 전생은 모조리 포식하는 쪽의 생물이었다. 그는 이미 태생이 ‘제왕’ 이였다. §
코멘트
- 저는 나스 키노코가 기원이라는 설정을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것이 아닐까 유추할 뿐입니다. 공의경계에 등장하는 빌런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가 강한 이유가 그가 수많은 전생들에서 포식자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척 흥미로운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의경계 포스팅 스리즈를 마치며.
포스팅을 쓰면서 제가 과거에 정리해 놓은 공의경계 명대사, 명문장들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영화 <매트릭스>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떠올렸습니다.공의경계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다양한 종교를 레퍼런스로 삼았고, 사실을 근거로 상상력을 펼친 설정들로 가득한 라이트노벨이기 때문입니다.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 이유는 공의경계 문체 자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를 라이트노벨 화 시킨 느낌이 난다는 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소설들의 주제의식과 공의경계에 등장하는 설정이나 묘사들이 서로 공통적으로 '허무주의'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아쉽게도, 공의경계 시리즈를 제외하고 나스 키노코의 소설은 (물론 출판된 소설 자체가 많지 않기도 하고) 한국에서 정식 출판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의경계가 아닌 다른 그의 소설을 한글로 읽어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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