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4월을 기억하며)
나는 근 20일 가까이 유치장 신세를 졌지.
갈 데가 못돼, 농담이라도 갈 데가 못된다구. 허용되는 개인 소지품이란 반으로 자른 수건 딱 하나뿐이고, 책도 못 읽고 누울 수도 없어. 콧노래도 못 불러, 뭐 콧노래를 부를 기분이 들지도 않겠지만.

-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서 유머는 자주등장하지 않지만, 등장했다 하면 위트 넘친다.


(당신과 밤, 음악)
지금 그가 하는 일은 사무자동화를 이룬 기업이나 회사를 상대로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이다. 회사에서 상세하게 작업방식을 듣고, 그것을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하는 작업이었는데, 이게 또한 큰 성공을 보았다. 컴퓨터와 로봇의 도입 단계에서는 단순노동자가 직장에서 쫓겨났지만 그런 종류의 사무자동화는 중간관리직이 쫓겨난다고 한다. 즉 이제까지는 중간관리직이 몇 명의 스태프를 부리면서 의견과 정보를 정리하고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지금은 모든 것이 컴퓨터에 입력되어 컴퓨터가 판단하고 그것을 윗선에서 결정을 위한 자료로 쓰는 것이다.
"우리 같은 수컷들의 수난 시대야."
이렇게 말한 친구는 '그 모든 제도의 벽을 뛰어넘고 즐기지 않으면 손해다.'라고 결론을 내렸고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남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쾌락이란 무엇일까 하는 바보 같은 이야기가 화제가 된 것이다.
"사회적인 건 안돼. 그러니까 성장한 아들과 야구를 한다든가, 골프 시함에서 인을 언더바로 돌아서 기전의 우승을 해낸다든가 하는 사회적 생물로서의 인간의 즐거움은 제외하는 거야."
샤냥도 만만치 않은 쾌락인가 보더라고. 친구도 동의는 했지만 둘 다 경험이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섹스 뿐인가.
"그렇게 먼 길을 돌어서 섹스밖에 없다, 그것을 변명할 만한 조건들을 찾아다닌 기분이군. 결국 마약하고 섹스밖에는 없겠지? 너, 마약은 어때?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할 때까지 LA에 있었을 때 일 관계로 사람을 만나기만 해도 꽤 했었는데. 옛날에 마리화나 정도라면 몇 번 한 적 있어. 학교 다닐 때.
"그래? 그런 초보자, 아니 미성숙아에게 자극적인 이야기를 해서 미안한데, 난 상상력이 있는 인간에게 있어 교감신경을 모두 오픈하고 나서의 섹스만큼 쾌락적인 것은 없다고 봐."
LA에 지옥의 등불 이라는 너저분한 SM클럽이 있었는데, 거기는 상대방이 거부하지 않는 한 무슨 짓을 해도 좋은 데거든. 에이즈 때문에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지독한 곳이었지.
그런데 어느날 밤,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얼마나 쇼킹한 짓을 하나 하고 들여다봤는데, 10대의 건강해 보이는 커플이 아이 러브 유를 속삭이면서 키스를 하는 거야. 그것뿐이었어. 그 광경을 뼛속까지 무장된 변태들이 부럽다는 듯 쳐다보더라고. 나는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여자애한테 키스하지 못했던 사실이 떠올랐어. 그 여자애는 노을빛 아래에서 입술을 내밀어 주었는데 키스를 못 했어. 그 일을 떠올리고는 뭔가 약을 했던 탓도 있겠지만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렸지. 모든 것이 헛수고로 느껴지는 거야.

- 상당히 인상적인 구절이다. 무라카미 류가 왜 그렇게 섹스와 마약으로 범벅이 된 글을 쓰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의견을 내새우고 있지만, 사실 이 구절에서 무라카미 류는 그 이유에 대해 제법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중에서 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의 주제의식에 대해 언급한 것을 발견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무말도 하지 말아요)
미국에 있던 무렵, 나는 한 여자를 좋아했었지, 그녀는 지적이라고 할까? 어쨌든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컷으로서의 나를 좋아하게끔 했어야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네. 알겠나? 머리가 좋은 여자일수록 수컷으로서의 전체를 갖고 싶어 한다고, 사회적 배경에 눈이 가는 여자일수록 실은 바보야. 흔히들 그 반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지.
얼마나 훌륭한 여자였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대선배가 수컷으로서의 매력이 없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녀가 그 이상의 수컷을 알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 누군가의 사귀고 몸과 마음을 나누어도 그래도 항상 아련한 사람이 있다. 노래 가사처럼 곁에 있어도 보고싶은 사람. 그런 연애를 해본 적 있다.


(나를 달까지 보내주세요)
내가 영어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얼마 되지 않는데 <Fly me to the moon> 은 그 중의 한 곡이다. 가사를 암기할 정도이고 보면 아마도 여러 가수가 여러 방식으로 편곡해서 부르는 것을 수백 번이고 들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 재즈바에서 여자 보컬리스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너무나 신선했다. 게다가 기묘하게 아늑해서 몸을 앞으로 쑥 내밀 뻔했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 봐도 그런 경험은 이제까지 없었다.
같은 연배의 그 친구는 영화의 타이틀 백 때 듣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몇 백번이나 그 테마곡을 들었다. 나는 그 재즈바에서 듣기 위해 몇 백 번이고 그 노래를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 곡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을 뛰어넘은 신비적인 체험을 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신비적' 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다시는 웃을수 없을 거예요)
매미를, 어째서 매미를 배워야 한다고 한 것일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인생의 참된 가치는 무엇인가를 찾으려고도 하지만, 매미는 단지 생식을 위해 큰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만으로 몇 년이고 땅 위에서 살아남는 법을 택했다. (매미는 큰 울음소리를 내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유충인체로 땅 위를 기어 다닌다) 잠자리나 나비, 기타 여러 곤충이 살아남기 위해서 몸을 작고 자유롭게 했지만, 매미만이 완고하게 수백 수천만 년에 걸쳐 거대화를 추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 무라카미 류는 곤충이나 기생충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지식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그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나의 모든 것)
왜 저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죠?
당신에게는 보이지 않나요?
당신 품에 안긴 채 이렇게 기대하고 있는데
입술을 훔쳐 가요
저는 빼앗기고 싶단 말이에요
두 팔을 드릴게요
당신을 안는 것 이외에는
쓸모없는 팔인 걸요
당신은 안녕이라고 말하고 저를 울렸죠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에요
당신 없이
마음만을 빼앗아 가다니 너무해요
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길 바랐는데
저의 모든 것을요

(나의 우울한 당신)
이쪽으로 오세요
우울해 보이는 그대
안아 드릴게요
우울해지만 못써요
아마 당신이 두려워하는 건 모두 다 바보 같은 환상일 거예요
물론 나는 당신을 좋아하죠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말고
새벽을 기다리는 거예요
키스로 눈물을 닦아 드릴 테니
웃는 얼굴을 보여 줘요
그렇지 않으면 나까지
멜랑콜리해질 테니까



- 각 쳅터에는 쳅터의 제목이자 제즈곡의 제목인 노래의 가사가 나온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적어 보았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