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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사진

근데 눈떠보면은 없잖아. 엄마가. 아무도 없어.

 

영화 '파수꾼'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후 읽기를 권합니다.

태블릿이나 PC환경에서 읽기를 권장합니다. 

 

파수꾼 평점

왓챠: 3.9/5

IMDb: 7.1/10

메타크리틱메타스코어(전문가 평점) = - ,  유저 스코어 = - 

로튼토마토전문가 평가: - , 관객 평가: 74/100

전체 평균점수 : 74.3

JMS(Just Movie Score) : 90/100

*JM은 필자가 왓챠에서 만점을 준 영화를 기준으로 선별, 포스팅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JMS란 별5개 영화중최하점을 0점 최고점을 100점으로 환산하여 선정한 점수입니다.

 

파수꾼 스토리

한 소년이 죽었다. 평소 아들에게 무심했던 소년의 아버지(조성하)는 아들의 갑작스런 공백에 매우 혼란스러워하며 뒤늦은 죄책감과 무력함에, 아들 기태(이제훈)의 죽음을 뒤쫓기 시작한다. 아들의 책상 서랍 안,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던 사진 속에는 동윤(서준영)과 희준(박정민)이 있다. 하지만 학교를 찾아가 겨우 알아낸 사실은 한 아이는 전학을 갔고 한 아이는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았다는 것. 뭔가 이상하다.
 그러던 중, 간신히 찾아낸 희준은 ‘기태와 제일 친했던 것은 동윤’이라고 말하며 자세한 대답을 회피한다. 결국 아버지의 부탁으로 동윤을 찾아나선 희준. 하지만, 학교를 자퇴하고 떠나버린 친구는 어디에도 없다.
 천진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 미성숙한 소통의 오해가 불러 일으킨 비극적 파국. 독단적 우정이 가져온 폭력과 그 상처의 전염은 우리를 아프고 충격적인 결말로 이끌어간다. 서로가 전부였던 이 세 친구들 사이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네이버 영화에 발췌]

 

파수꾼 스틸컷

 

스틸컷1

1. 복도식 아파트 옥상의 모습이 담긴 전경 위로 파수꾼 타이틀이 등장한다. 사실 영화의 내용과 크게 관련이 있는 장면은 아니지만, 어딘가 건조해 보이고 위태로워 보이는 복도식 아파트 옥상의 전경, 그리고 뒤로 스모그가 잔뜩 껴 있는 아파트 후경의 모습은 영화의 톤과 잘 어울린다. 또한, 이 스틸컷 자체만 놓고 봐도 삭막하지만 어딘지 서정적인 느낌이 나는 매력적인 사진이 된다.

 

스틸컷2

2. 폐 기차역
폐 기차역은 기태와 희준이 사이좋던 시절 같이 야구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동윤과 기태가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기태가 희준을 괴롭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폐 기차역은 자칫하면 지나치게 일상적인 로케이션으로만 구성되어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었던 영화 파수꾼의 로케이션에 다양성을 부여한다. 또한, 폐 기차역은 세 사람, 특히 기태에게는 짧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스틸컷3

3. 기태가 죽은 후
기태의 죽음으로 아이들은 충격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한다. 다들 기태의 죽음은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 예로 희준은 기태의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지만, 기태 아버지에게 자신의 번호를 알려준 재호에게 따진다. 물론 동윤은 끝까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틸컷4

4. 절제
사실 파수꾼이 다루고 있는 다양한 소제들은 파수꾼을 부정적 의미의 신파(어느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신파는 감정 표현의 과잉이라 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영화로 만들어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도 이런 소제들은 다루는 대부분의 영화는 신파극이 된다) 기태의 죽음, 장례식장, 학교폭력, 상처가 있는 여자아이, 아들을 잃은 아버지, 어머니가 없는 아이. 하지만 파수꾼은 다양한 감정이 폭발하는 이러한 극적인 상황들 속에서도 등장인물의 감정은 최대한 절제되어 있다. 연출방식 또한 절제되어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소리 내 울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이다,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장례식장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기태의 죽음 또한 은유적으로 짧게 표현된다, 다만 기태의 폭력성만은 제법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이것은 기태의 폭력성이 그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태의 폭력성은 연극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슬픔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장치로서 작동한다)

 

스틸컷5

5. 클라이맥스 부분의 영리한 연출
영화 후반부에 영리한 연출이 나온다. 동윤이 기태에게 독설을 날리고 기태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윤이 울면서 잠에서 깨어나 거실로 나가면 기태가 앉아있고, 동윤은 상상 속의 기태와 대화하듯 과거를 회상한다. 그러다 기태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동윤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10분 남짓한 시퀀스 속에서 기태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동윤의 독설, 기태의 죽음, 기태에게 있어서 동윤이라는 존재의 의미까지 모두 담겨있다. 동윤의 상상인지 회상인지 모호한 느낌을 주는 연출도 탁월하고, 기태의 죽음 이후 바로 동윤의 상상 속에 등장해 동윤에게 고마움과 애정을 표현하는 기태를 통해 기태의 죽음을 더 비극적이고 가슴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탁월한 연출 덕분에 기태는 단순한 학교폭력의 가해자를 넘어선, 더욱 미묘하고 입체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스틸컷6

6. 기태의 야구공
기태의 대사를 통해 유추해 보면, 기태의 야구공은 아마 어머니에게 받은 선물로 추정된다. 따라서 기태가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던 것도 어머니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태는 자신을 피해 다른 학교로 전학 간 희준에게 이 야구공을 선물한다. 이 행위는 기태가 희준을 소중한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보경의 고백을 거절하는 기태의 모습에서도 희준을 생각하는 기태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머니에게 받은 야구공을 타인에게 양도함으로써 기태 스스로 어머니의 부재를 벗어나 스스로 강해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스틸컷7

7. 기태가 행하는 폭력의 이유
다른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복종하는 것만 `의존`이 아니다. 타인에게 행하는 폭력 또한 일종의 `의존`이다. 기태는 폭력을 통해 타인에게 관심을 끌어내고 그를 통해 자신의 공허함, 어머니의 부재에서 오는 상대적 열등감을 극복하려 한다.

 

스틸컷8

8. 엔딩 컷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클라이맥스에서도 등장한 회상과 상상이 겹쳐져 있는 연출이 또 등장한다. `그래, 니가 최고다, 친구야` 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동윤의 모습은 기태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한 동윤이 늦게나마 죽은 친구에게 남기는 사과와 위로의 말 이자 기태를 죽음으로 내몬 `너만 없었으면 돼` 와 반대되는 말이다. 이 말은 동윤의 말이자 감독이 기태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또한 동윤의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기태의 모습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 또한 기태가 전하는 용서의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파수꾼 평론

1. 핸드헬드만으로 촬영한 영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핸드헬드(카메라를 삼각대에 들고 찍는 것이 아니라 스테디캠 등으로 들고 찍는 기법) 기법으로 촬영되었다. 사람마다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화면이 고정되지 않고 미세하게라도 움직이는 핸드헬드 기법을 좋아한다. 실제 사람의 시선도 항상 핸드헬드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기 때문에 몰입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2. 기태의 아버지를 희준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게 하는 교차편집. (영화 초반부에 희준과 기태의 아버지가 만나는 장면으로 그 의문은 풀리지만 그전 까지 탠션은 유지)
물론 기태의 아버지와 희준이 만나는 초반부의 장면을 통해 중년의 남자가 기태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금방 밝혀지지만, 그전까지 기태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희준의 모습과 아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중년 남자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면서 영화는 기태의 아버지를 희준의 아버지라고 혼동하게 만들고 죽은 사람도 기태가 아니라 희준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 초반부에 희준과 기태의 아버지가 만나는 장면이 나오면서 이 영화적 장치가 금방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가해자이자 일종의 피해자인 기태의 속성을 부각하는데 용이한 연출이자, 관객에게 몰입감을 주는 서스펜스적인 연출로서 작동하는 것은 분명하다.

 

평론3

3. 주연배우들의 명연기, 감독의 탁월한 디렉팅.
다양한 스펙트럼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큰 주목을 받는 `박정민` 배우(희준역)의 데뷔작이기도 하고, 드라마 등에서 연기력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명실상부한 주연급 배우가 된 `이제훈` 배우(기태)의 강렬한 눈빛과 다채로운 표정 연기를 볼 수 있다. (나는 이제훈 배우가 연기에 있어서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강렬한 눈빛 연기나 반항아같이 높은 텐션이 필요한 배역을 제외한 나머지 배역을 연기할 때 이제훈 배우는 엄청나게 특색있는 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애초에 뛰어난 배우들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겠지만, 위에서 스틸컷 4 에서 언급한 절제와 비슷한 맥락으로서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쓰는 대사가 지나친 비속어나 은어 없이 일상적인 언어로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있고 연기 톤에 그것에 맞게 구어체로 잘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태가 여자를 꼬시는 법에 관해 이야기 하는 씬에서 대사와 연기의 자연스러움이 잘 드러난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력과 감독의 탁월한 디렉팅은 상황만 주어진 상태에서 찍은 3:3 월미도 데이트 씬 에서도 잘 표현되었다. 윤성현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디테일에도 탁월함을 보인다. 예를 들어 3:3 데이트에서 세정이 앞치마를 두르고 꽃을 든 재호에 관해 이야기 하는 씬이 존재하는데, 나중에 학교에서 꽃집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재호에 관한 이야기로 설정이 이어지기도 한다.

 

4. 롤랑 바르트가 말한 두 종류의 `상처`에 대해 완벽하게 표현한 영화.
프랑스의 철학자 롱랑바르트는 인간의 심리에 두 종류의 상처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종이에 손가락을 베인 상처처럼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반화된 상처를 말하는 `스투디움`과 나머지 하나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고 해석할 수도 없어서 예비하거나 대처할 수도 없고, 결론적으로 소통 불가능한 상처인 `풍크툼`이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기태가 느끼는 고통(상처)은 당연히 `풍크툼`이다. 실제로 기태는 왜 그러냐고(왜 희준에게 폭력을 행하느냐고) 묻는 동윤의 말에 언어로서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롤랑 바르트는 말했다.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 기태의 상처는 자신도 설명할 방법이 없고 그러므로 타인이 이해하기도 힘든 아픔이다. 그래서 기태의 상처는 더 서글프다. 내가 본 수천 편의 영화 중에서 롤랑 바르트가 이야기한 `풍크툼`에 대해 이렇게 완벽하게 표현한 영화는 없었다. 물론 `풍크툼`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시도한 감독들은 몇몇 알고 있지만 그러므로 그들의 영화도 `풍크툼` 처럼 쉽게 이해하기 힘든 영화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윤성현 감독을 세계적인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파급력 면에서는 세계적인 감독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가 만든 `파수꾼`이라는 영화는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얼마 전 윤성현 감독이 연출한 `사냥의 시간`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평론5

 

5. 일종의 미스터리적, 수사물적인 요소 가미
파수꾼은 크게 아이들의 이야기와 기태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는 기태 아버지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진행되는 구성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일종의 수사물적 요소, 미스터리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의 비중이 크진 않지만, 이러한 요소가 자칫 일상적인 톤으로 빠질 수 있는 파수꾼의 이야기에 신선함을 주고 관객을 몰입시키게 만드는 장치로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 때문에 감독은 기태 아버지와 재호의 대화, 기태 아버지와 선생님과의 대화를 관객에게 의식적으로 차단한다. 물론, 나중에 기태 아버지와 희준이 나누는 대화는 영화에 등장하고 그것은 이야기를 진행하며 이야기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하지만 윤성현 감독은 아마 이 대화 또한 대화가 아닌 다른 장면으로서 묘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었기에 포기했을 것이고 기태 아버지와 희준이 나누는 대화가 이야기의 방향성을 정하는 구성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들의 이야기 또한 시간순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아 위에서 언급한 수사물적, 미스터리적 구성 방식에 힘을 더해준다. 이러한 장치들로 인해 관객은 영화의 중반부가 넘어갈 때까지 일종의 서스펜스를 가지고 간다. 이러한 관객의 서스펜스적는 기태의 죽음으로 팽팽한 고무줄이 갑자기 끊어지듯 순간적으로 완전히 소멸하고, 긴장감이 사라진 감정의 공간에 기태의 죽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대신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기태의 죽음에 대한 관객의 감정은 더 큰 낙차로 곤두박질치게 되고 그만큼 더 큰 여운을 남기게 된다.

 

6. 기태
모든 인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양면성이 개연성 있게 표현될 때 등장인물은 입체적인 캐릭터가 된다. 이러한 입체성은 결국 캐릭터의 리얼리티로 자리 잡는다. 영화는 몰입의 매체이다. 따라서 이러한 리얼리티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 관객은 영화에 몰입하게 되고, 그 몰입 속에서 어떤 감정이나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우리가 기태라는 캐릭터에 강하게 분노하거나 절실히 연민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리얼리티 때문이다.

 

평론7

 

7. 희준, 희준과 야구공
사실 영화를 3~4번 봐도 희준이라는 캐릭터는 개연성은 살짝 모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봐도 보경의 고백을 거절하는 기태인데 혼자 이상한 오해를 하는 점도 의아하고 (물론 희준의 콤플렉스는 연애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것을 고려해도 이해하기는 힘들다), 기태의 계속된 사과에도 차갑게 일관하는 점, 기태와 완전히 엇나가기 전까지 비굴하거나 위축되는 모습이 잘 지내던 희준이 화장실 담배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어딘가 고장 난 듯이 일관적으로 기태를 싸늘하게 대하고 무시하듯 행동하는 모습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동안 기태에게 쌓여있던 불만이나 연애에 대한 열등감이 화장실 담배사건을 통해 일순간 폭발했다고 억지로 이해하려 할 수도 있겟지만 그마저도 너무 급작스럽게 다가온다. 희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희준에 대한 배경 설명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추신: 희준이 기태가 준 야구공을 동윤에게 돌려준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태에게 소중한 물건이자 그의 유품인 야구공을 자신보다는 동윤이 가지고 있는 것이 기태와 동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가능성. 두 번째는 기태의 죽음에서 홀가분해 지고 싶은 희준의 바람에서 온 행동일 가능성이다. 희준은 기태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번호를 알려준 재호를 나무라고, 동윤에게 야구공을 전달하면서도 이제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투로 이야기한다. 물론 기태의 죽음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 진실에 대한 호기심, 혹은 기태 아버지를 위한 마음으로 동윤과 기태 아버지를 연결해준 면도 없진 않겠지만, 희준이 기태 아버지에게 동윤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제일 큰 이유는 아마 본인 스스로 기태의 죽음에서 홀가분해 지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8. 동윤
동윤은 기태의 중학교 때 부터 친구이다. 영화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동윤의 회상씬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기태의 (아마 가정환경에 문제로) 중학교 시절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마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였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런 기태는 동윤을 통해 용기를 얻게 되고 힘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동윤은 기태에게 빛과 같은 존재인 동시에 결과론적으로 악의는 없지만 결국 기태를 파멸로 몰아넣은 장본인 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윤은 기태의 아버지와 만나는 자리에서 끝내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물론 그것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기태의 죽음이 `풍크툼`에서 기인했기 때문인 점도 일정 부분 존재하지만 결국 동윤도 기태의 죽음에서 도망친 것이다.

 

평론9

 

9. 기태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
동윤: 니가 역겨워서 모두 널 떠나는 거야.
기태: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동윤: 아니, 잘못된 건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부모의 이혼이나 결별을 자책하는 아이의 심리)

부모가 이혼하거나 죽게 되면 아이는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스스로 자책하는 심리상태를 갖기도 한다. 그것이 굳어지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경멸하는, 전 생애에 걸친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이것은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트라우마이다. 기태도 마음속 깊숙이 엄마가 날 떠난 이유가 나 때문은 아닐까 하는 자책의 심리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동윤이 말하는 모두는 아마 동윤과 희준, 기타 친구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지만 기태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집을 나갔거나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자신이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자신의 제일 아픈 곳을 헤집고 들쑤실 때 사람은 무너진다. 중의적 의미가 담긴 동윤의 미묘한 대사, 어머니의 부제와 그에 따른 아이의 심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을 작품속에 녹여 들어가게 만든 윤성현 감독의 재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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